ㆍ늙어가는 日, 서글픈 ‘황혼’

지난 15일 오후 도쿄 스가모의 지조도오리 상점가는 연말을 맞아 이곳을 찾은 노인들로 붐볐다. 이 시장통은 젊은이들의 패션가인 하라주쿠에 빗대 ‘노인들의 하라주쿠’라고 불린다. 약 1㎞에 걸쳐 있는 길 양편에는 의류와 과자, 신발 등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취급하는 상품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의류나 지팡이, 모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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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일본에서 노인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도쿄의 한 유료양로원에서 한 노인이 휠체어에 앉은 채 잠을 청하고 있다. | 산케이신문 제공

 
이날 이 거리 작은 신사 옆의 공원벤치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마땅히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진을 치고 있었다. 부근에 산다는 스기타 유코 할머니(89)도 1주일에 2~3차례 여기를 찾는다.

“지난해 할아버지(남편)가 죽고 나서 산보 삼아 가끔 여기 나와. 한 달에 10여만엔 나오는 연금이 빠듯하긴 하지만 난 행복한 편이야.”

기자가 최근 일본에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노인 학대 얘기를 꺼내자 “외롭긴 해도 그런 건 모르고 산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학대 문제가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주변에서 그런 일을 겪은 사람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갈수록 고령화가 진전되고 있는 일본에서 노인들이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노인학대, 고독사가 종종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가 하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노인도 증가하고 있다. ‘장수 국가’ 일본이 고령화의 후유증에 따른 몸살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총무성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는 지난 9월 현재 총인구 1억2700여만명 중 2944만명으로 23%를 차지하고 있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독거노인 가구수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독거노인 가구는 1955년 42만5000가구에서 65년 79만9000가구로 증가했고 2005년에는 386만가구까지 불어났다.

노인학대는 그중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지난달 23일 후생노동성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확인된 65세 이상 노인학대 건수만 1만5691건으로 전년 대비 5% 증가했다. 2006년 고령자학대방지법이 시행됐지만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특히 노인학대의 70% 이상이 아들, 딸, 배우자 등 가족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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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할머니가 손자와 함께 나가노현 사쿠시의 한 사찰에서 석상에 물을 부으며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죽을 수 있게 해달라’는 불공을 드리고 있다. 사쿠 | 연합뉴스


도쿄 신주쿠에 거주하는 와카마쓰 기요코 할머니(가명·70)는 지난 9월 아들(32)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고령자종합상담센터를 찾았다. 할머니는 상담센터에 “3~4년 전부터 주먹으로 때리는 건 물론, 아들이 던지는 물건에 맞아 몸에 멍이 들기 일쑤”라며 도움을 청했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아들은 툭하면 술을 먹고 들어와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렸다. 결국 이 할머니는 노인 보호시설에 입소하고 나서야 아들의 폭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병든 부모를 돌보다가 살인에까지 이르는 비극도 종종 일어난다. 지난 11일 일본 북부 아키타현에서는 92세의 노모를 살해한 65세 아들이 경찰에 구속됐다. 아들은 경찰 진술에서 “어머니가 10여년 전부터 병을 앓으며 고생해온 모습을 보다가 불쌍하다고 생각해 살해했다”고 말했다.

신주쿠구 고령자서비스센터의 나가요시 요시히로 과장은 “노인에 대한 폭력은 가정문제로 치부되기 때문에 경찰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며 “특히 장기 간병에 따른 경제적·정신적 스트레스가 극한에 달하면서 부모를 살해하는 비극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나가요시 과장은 “노인학대의 특징으로는 40~50대 무직자 아들에 의해 당하는 사례가 가장 많다”고 말했다. 고용시장의 불안이 엉뚱하게 노인학대로 이어지는 셈이다.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두는 ‘고독사’ 문제도 고령화 사회의 심각한 부작용이다. 신주쿠구의 경우 2008년 한 해에만 218건의 고독사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65세 이상 노인의 고독사는 129건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11명의 노인은 숨을 거둔 지 2주일이 넘어서야 발견됐다. 나가요시 과장은 “대부분 가족이나 주변과의 관계를 끊고 살았던 노인들”이라며 “이들이야말로 ‘무연(無緣) 사회’의 희생자”라고 말했다.

‘외로워서’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노인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8월 경시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절도로 적발된 범죄자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절도 건수의 약 25%(2만7019명)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절도를 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노인 4명 중 1명꼴로 “외로워서, 고독해서”라고 답했다고 경시청은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훔치는 것은 대개 과자나 통조림 등 값싼 상품이 대부분”이라며 “물건에 대한 욕심보다는 ‘누군가와 관계를 갖고 싶다’는 이유에서 훔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경향신문 / 2010.12.19